우연이 운명이 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자만추’를 꿈꿉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건, 우연한 만남을 추구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만남 자체를 목적으로 한 소개팅이나 선 자리보다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상황’을 꿈꾸는 것이니까요.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 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테드는 그 우연을 자신이 직접 설계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입니다. 한 예로, 이상형의 여자 ‘로빈’이 워크숍 때문에 자신과 데이트를 못 가게 되자, 테드는 무려 ‘비를 내리게 하는 춤’을 배워 기우제를 지냅니다. 비가 내려 워크숍이 취소되게 하기 위해서요. (비는 정말 옵니다)

그러나 테드가 우연을 이렇게 통제하려고 할 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운명적인 사랑은 멀어지기만 합니다. 테드는 몇 번이나 자신과 맞지 않는 상대를 붙잡으려 하며 절망하고, 상처를 받게 됩니다. 특히 운명의 그녀라 의심치 않았던 로빈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짜 맞추려 하죠.
놓쳐버린 풍선처럼 닿지 않는 로빈을 보며, 테드는 초조해질 뿐입니다.

테드를 보면 저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생각이 납니다. 맥베스는 왕이 될 거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의지대로 이를 실현시키려 하지만, 결국 그 예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우연의 결과일 뿐이었죠.

테드는 다행히 맥베스처럼 파멸을 맞이하지는 않아요. 우연을 통제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테드는 더 이상 운명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테드가 가장 예상하지 못했을 때 만난 ‘그녀’.
그녀와는 로빈과 달리, 모든 것이 쉽습니다. 예전과 달리 기다리는 것이 어렵지 않죠.

테드는 그녀를 만난 후,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들, 모든 실패와 성공, 모든 만남과 이별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삶의 순간에 감사를 느낍니다.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에게 우연은 운명으로 작동해 선물을 던져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연의 집합체가 되어주는 것이죠. 무언가를 얻고자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제가 아닌 믿음이라는 것. 비단 사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갈망하는 모든 것에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명언이 가득한 시트콤으로도 유명한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지어볼까 합니다.

I know that you are tired of waiting, and you may have to wait a little while more, but she’s on her way, Ted. And she’s getting here as fast as she can.

알고 있어, 네가 기다리는 게 지쳤다는 거. 그리고 아마 조금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오고 있어, 테드. 그리고 최대한 빨리 오고 있을 거야.